가을비가 내린다.

수정해야할 업무가 있어 한참을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하다가 문득 매장밖을 보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얼마만에 보는 비인가 싶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갔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후끈하게 올라오던 지열까지도 식혀버린지 오래다. 담배를 한대 물고는 한참을 지켜보았다. 이럴때면 언제나 한국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대학때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가을날 이렇게 비라도 오면 조용히 가방을 싸들고 학교 뒷편에 있던 작은 함바집으로 향했다. 함바집 귀퉁이 한켠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방엔 어김없이 몇몇 지인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멀찌감치 들어오는 내게 벌건 웃음을 던진다. 어이~이제서야 오시는구려…라는 웃음이다. 방 한켠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슬래트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곳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살 수없는 귀한 술잔이 오고가는 곳이 된다. 게다가 인심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뻔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라면이나 시켜두고 술 마시면 몸 상한다며, 꽃게 다리만 따로 하나둘 모아 꽁꽁 얼려두셨다가 각종 야채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일명 사랑의 ‘꽃게다리’탕을 주시고는 했다. 감사의 탄식과 함께 일동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앉으면 그 작은 방안은 막걸리향과 꽃게탕의 향 그리고 웃음의 향기가 가득했다.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뚜렷하지는 않아도, 얼마나 해맑게들 웃고 있었는지 그 얼굴들은 깨끗하고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보다는, 그런 시절을,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게 해주어 감사한 마음이다. 이 먼 타국에도 가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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