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t be ‘communicated’…

smile_mod_500.jpg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트위터 상에서의 대화를 보다가….예전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진은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엄청난 것이었다. ‘자본론’을 ‘공산당 선언’을 후배들에게 읽히고,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을 공부하며, 학습을 시킨다고 할지언정 사진 한장이 주는 의미만큼도 되지 않았다. 그 ‘사진’을 대학을 졸업하고, 군을 제대하고…직장에 들어가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뛰게했고, 울게했고, 설레게 했다. 그러다가 나는 몇몇 사람들을 모아서 사진으로 시작하는 첫 사회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전국의 독거노인 무료 영정사진 봉사 촬영이었다. 우리는 일년간 400여분의 사진을 촬영했다…그러나 그 시기에 나는 한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세상의 어두운 곳에 사진기를 들고 들어가니 ‘사진’을 찍는 우리는 그저 단발적인 ‘쑈’를 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들의 빈곤과 그들의 외로움과 그들의 눈물을 그냥 고스란히 두고 와야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그러고는 사진을 찍겠다고 셔터를 누른 사진들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정도였다. 너무 괴로웠었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기가 겁이 났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인천의 한 복지관에서 만난 할머님을 통해 나는 사진기를 다시들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의 할머님들과 촬영팀 사이의 그 아득하기만 한 어색함이 촬영하는 동안 내내 진행이 되었다. 뷰파인더로 할머님 얼굴이 들어왔다. 무표정에 흐트러진 머리칼. 잠시 눈을 떼고는 할머님에게 다가가서 옷무새도 고쳐드리고, 머리칼로 올려드리고, 차갑고 딱딱한 볼을 잠시 두손으로 꼬옥 만져드렸다. 그리고 다시 사진기로 돌아가 뷰파인터에 눈을 가져가서는 한마디를 했다. “할머니, 젊었을때 너무 미인이셨겠다. 그쵸?” 그 말이 끝나자 생각지도 않게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잊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상대가 사람이던, 동물이던, 하늘이던….내게 그 자신을 연다는 것.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된다는 것. 그것이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진 한장이 내게 주는 의미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Share this post with :

Twitter Technorati Google

back to list